5월1일은 근로자의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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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동절의 유래및의미 -

1) 1923년 한국 최초의 노동절 행사

    우리나라 최초의 노동절 행사는 1923년 일제 식민지 시절, 당시 노동자의 자주적 조직인 ' 조선 노동 총연맹'의 주도하에 처음으로 시작되었다. 약 2000여명의 노동자가 " 노동시간 단축, 임금인상, 실업방지" 등을 주장하며 전세계 노동자의 명절인 메이 데이 기념행사를 최초로 치뤘으며, 그 이후 1945년 해방되기 전까지 일제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굽힘없는 투쟁을 지속적으로 전개해왔다.

2) 해방, 전평 깃발하에 노동절

    마침내 해방이 되었다. 1945년 결성된 조선 노동조합 전국평의회는 1946년 20만 노동자가 참석한 가운데 메이데이 기념식을 성대히 치뤘다. 전평의 깃발아래 노동자들의 힘찬 함성이 울려퍼지는 서울운동장 야구장 바로 옆, 육상경기장에서 대한노총이 주최한 약 1,000여명의 우익청년과 노동자가 참석한 초라한 기념식이 치뤄졌다.

3) 날짜도 이름로 빼앗긴 노동절

    ① 이승만 정권하에 대한노총이 주관하는 노동절

    미군정과 대한노총의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은 폭력적인 전국노동조합평의회(이후 전평) 파괴로 수많은 조합원이 해고되고 검거되었다. 게다가 미군정은 정치색을 띤 노조는 일체 정당한 단체로 인정하지 않겠다며 마침내 전평을 불법단체로 만들었다. 그 뒤를 이어 전평 타도 기수로 미군정의 비호를 받아 무럭무럭 자라온 대한노총은 1948년부터 58년까지 노동절 행사를 주관하게 되었다.

    그 이후 대한노총 주도하에 진행되었던 노동절 대회는 한마디로 출세와 돈에 눈이 먼 대한노총 상층부가 노동자 대중의 뜻과는 관계없이 이승만과 자본가에게 충성을 다짐하는 날이 되었다.

    ② 대한노총 생일인 3.10을 노동절로

    1957년 이승만은 "메이데이는 공산 괴뢰도당이 선전의 도구로 이용하고 있으니 반공하는 우리 노동자들이 경축할 수 있는 참된 명절이 제정되도록 하라"는 명령을 노총에 지시했다. 이승만이 지시가 떨어지기가 무섭게 대한 노총은 노총 결성일인 3월10일을 노동절로 결정했다.

    " 3월 10일을 노동절로 기념하게 된 것은, 과거 5월 1일 메이데이를 경축하여 왔으나 이는 적색 공산 국가들간에 공통적으로 기념되는 날로서 오직 자유와 평화를 사랑하는 대한의 노동자 대표들은 폭압하고 잔인무도한 공산도당과 같은 날에 함께 즐길수 없다는 의도하에 .... 대한의 참다운 민주 노동자들의 총결집체인 대한노총을 창립한 3월 10일을 한국의 노동절로 축하하고 기념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한국노동운동사} - 한국노총 출판

    무릇 모든 기념일에는 그 날짜에 치뤄져야 하는 특별한 이유와 의미가 있다. 설날이나 성탄절도 매년 그 날짜인 것과 마찬가지로 메이데이도 5.1에 치루는 것은 그나름의 이유가 있다.

    그것은 1886년 미국 시카코 노동자의 투쟁과 희생인 "피의 헤이마켓 사건", 즉 노동자의 이익과 권리는 권력과 자본에 맞선 단결 투쟁을 통해서만 지켜질수 있다는, 세계 노동자들에 대한 생생한 역사의 일깨움인 것이다.

    이것이 바로, 다른 날이 아닌 5월1일을 노동절로 기념하는 의미인 것인다.

    정권과 자본은 노동자의 머리속에서 메이데이라는 말조차 아예 지워버림으로서 이땅의 노동자를 권력과 자본에 순종하는 일 잘하고 말 잘 듣는 기계로, 의식없는 노동자로 만들려고 5.1 노동절을 대한 노총의 생일인 3월10로 바꾼 것이다.

    대한 노총의 어용성으로 빼앗긴 메이데이. 이는 곧 일제시대 이후 끊임없이 투쟁해온 선배노동자와 노동운동의 빛나는 전통과 정신을 박탈하는 것이며 이후 남한의 민주적인 노동운동에 암흑시대를 예고하는 것이었다. 그 결과 남한 노동자들은 그 이후 메이데이를 까맣게 잊고 반노동자적인 어용노총의 생일을 자신의 것인양 알고 지내왔던 것이다.

    ③ 노동절이 근로자의 날로 이름마저 바뀌고 !

    4월의 함성으로 이승만 정권이 무너지고 5.16 군사구테타 이후 박정희 군사독재 정권이 들어섰다. 박정권은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노동자가 아니라 여왕벌을 먹이기 위해 아무생각 없이 꿀만 나르는 꿀벌처럼 일잘하는 '근로자'가 필요했다. 그리하여 껍데기만 남아있던 노동절마저 근로자의 날로 이름을 바꾸고 해마다 근로자의 날에는 산업역군이라는 사탕발림으로 열심히 일한 노동자를 [모범 근로자]로 뽑아 상을 주었다. 이제 더 이상 단결과 투쟁의 자랑스런 노동자가 아니라, 정부와 자본의 축제에 들러리 서주는 불명예스런 근로자가 된 것이다.

    메이데이 기념일도, 단결을 의미하는 노동자란 이름도 박탈당한 남한의 노동자는 다람쥐 쳇바퀴 돌듯 밤낮없이 일만하고 사회로부터는 공돌이 공순이로 불리우는 힘겨운 삶을 살아야 했다.

4) 아 ! 다시 되찾은 메이데이

    ① 1989년 제 100회 메이데이 기념대회

    87년 노동자 대투쟁이후 민주노조 운동은 단위노조에서 지역, 업종을 넘어 전국으로 들불처럼 확산되어 '노동법 개정 및 임금인상 투쟁본부'를 결성하였다. 1989년 투본은 제 100회 메이데이를 앞두고 근로자의 날을 노동자 불명예의 날로 규정하고 굴욕에 찬 지난날의 근로자 인생을 청산하고 한국 전쟁이후 단절되었던 5.1절 노동절의 전통을 회복할 것을 선언하였다.

    1989년 삼엄한 경찰의 원천봉쇄를 뚫고 연세대학교에 모인 전국의 5천여 노동자와 청년들은 전야제를 갖고 4월 30일 세게 노동절 기념대회를 개최했다.

    ② 전국의 노동자 매년 노동절 기념행사

    1989년 대회 이후 오늘까지 민주노조 진영은 해마다 세계 노동절 기념대회를 개최하여, 노동절 정신을 계승하고 노동자의 생활과 권리를 개선하기 위한 투쟁을 힘차게 전개해 오고 있다.

    이제 한국의 노동자들에게도 노동절은 노동해방과 인간해방의 숭고한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애써온 선배 노동자들의 투쟁과 삶을 되새기는 기념의 날, 당면한 노동운동의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투쟁하는 날로서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1990년에는 경찰의 원천 봉쇄에도 불구하고 서울대에서 3000여 노동자가 참가한 가운데 노동절 대회가 개최된 것을 비롯하여, 전국 15개 지역, 250여 노조에서 노동절 기념식이 열렸다. 1990년의 노동절 투쟁은 KBS 노조의 파업, 현대 중공업 골리앗 투쟁과 맞물려 5월 1일부터 4일까지 292개 사업장에서 연인원 34만명이 참여하는 5월 총파업 투쟁으로 발전해 갔다.

    1991년에는 연세대학교에서 3만여명이 참가한 대회가 개최된 것을 비롯해서 전국 14개 지역에서 10만여 명의 노동자가 참가한 가운데 세계 노동절 대회가 개최되었다. 1991년의 노동절 투쟁은 5월 9일 총파업과 강경대 열사, 박창수 열사의 죽음을 계기로 촉발된 5-6월 대투쟁으로 발전해 갔다.

    1992년에는 한양대에서 2만여 노동자가 참가한 가운데 노동절 대회가 개최된 것을 비롯해서 전국의 13개 지역에서 세계 노동절 기념 대회가 개최되었다.

    1993년에는 연세대학교에서 3만여 명의 노동자가 참가하여 기념대회를 개최하고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까지 가두 행진을 벌인 것을 비롯해 전국적으로 5만여 명의 노동자가 참가한 가운데 노동절 대회가 개최되었다.

    1994년에는 동국대학교에서 2만여 노동자가 모여 기념대회를 하고 대학로까지 행진을 전개하였다.

    1995년은 서울대학교에서 약 2만여 노동자가 모여 기념대회를 했고 보라매 공원까지 행진하여 마무리 집회를 개최하였다.

    ③ 1994년 5월 1일을 근로자의 날로 - 우리 노동자들의 투쟁으로 쟁취한 것

    94년 정부는 3월 10일에서 5월 1일로 근로자의 날로 개정하였다. 정부의 이런 법 개정 이전에도 전국의 노동자들은 이미 89년부터 이승만에 의해 빼앗겼던 5.1을 우리 힘으로 되찾아 3월 10일이 아니라 5월 1일에 세계노동절 기념행사를 치루어 왔다.

    정부가 노동절 기념일을 바꾼 것은 그동안 노동절 대회를 힘차게 벌여온 우리 노동자들의 힘과 요구를 더 이상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으로, 이제 다시 되찾은 5월 1일 노동절은 우리의 지난 6년간의 소중한 투쟁 성과인 것이다.

    물론 정부와 자본은 5.1일을 합법화 하여 노동자들의 투쟁을 무마하고, 근로자의 날이라는 이름을 고수하여 메이데이 정신을 계승하려는 노동자 의식을 마비시키고 정부, 자본에 대한 투쟁 열기를 식히려고 하지만 그것은 한낱 헛수고일 뿐이다. 이미 우리 노동자들의 가슴 속에는 수년간의 5.1절 투쟁을 통해서 지울 수 없는 노동절 정신이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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